눈이나 비가 내린 직후에는 낮은 기온 때문에 노면이 빠르게 얼어붙는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블랙 아이스’는 보행자에게 예기치 못한 낙상 사고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특히 뼈와 근육이 약한 노년층이나 골다공증 환자에게는 낙상이 단순한 타박상을 넘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고관절 골절 방치하면 70%가 2년 내 사망
22일 대한골대사학회의 ‘골다공증 및 골다공증 골절 팩트시트 2023’에 따르면, 50세 이상 성인 중 골다공증 골절을 겪은 이는 2012년 32만3,800명에서 2022년 43만4,5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50, 60대에선 손목과 발목 골절이 주로 발생하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고관절‧척추 골절 빈도가 늘어난다.
겨울철 낙상 사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위도 바로 고관절이다. 고관절 골절은 허벅지와 골반을 잇는 부위가 부러지는 것을 말한다. 이 부위가 골절되면 체중을 견딜 수 없어 극심한 통증이 생기고, 거동도 힘들어진다.
고관절 골절 중에서도 특히 대퇴경부 골절은 혈류 손상에 따른 합병증 위험이 커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대퇴경부 골절의 경우 골절 부위가 어긋나면 대퇴골두로 가는 혈류가 차단돼 뼈가 썩는 ‘외상성 무혈성 괴사’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면 뼈가 스스로 잘 붙지 않아 인공관절로 갈아 끼우는 수술을 해야 한다.
엄상현 바른세상병원 낙상의학센터장(정형외과 전문의)은 “노인 환자는 골절 부위가 단단히 고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가 까다롭다”며 “전위(어긋남)가 없는 미세 골절은 일반적인 엑스선(X레이) 검사로는 확인이 어려워 초기 진단을 놓치기 쉽다”고 설명했다.
고령 환자에겐 골절 자체도 치명적이지만, 골절 이후는 더 큰 문제다. 수개월 동안 침상에 누워 지내다 폐렴과 욕창, 하지정맥 혈전증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이 잇따를 수 있어서다. 특히 폐렴은 침상에서 오랜 기간 누워 지내는 고령 환자에게 발생하는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다. 고관절 골절 수술 환자의 1년 내 사망률은 약 14.7%에 달한다.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할 경우엔 2년 내 사망률이 70%까지 치솟는다.
김상민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고관절 골절은 여성 기준으로 2명 중 1명이 이전의 기동 능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며 “4명 중 1명은 장기 요양시설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중증 질환”이라고 말했다.
낙상 사고 70%가 집안에서 생겨
낙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행 습관부터 교정해야 한다. 보폭을 평소보다 10~20% 줄이고 천천히 걷는 것이 균형 유지에 유리하다. 가장 위험한 습관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것이다. 넘어질 때 몸을 지탱할 수 없어 안면부나 고관절에 더 큰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장갑을 착용해 두 손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복장 역시 중요하다.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고무창 신발을 선택하고, 바지 길이는 발목에 걸리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겨울철 두꺼운 외투는 민첩성을 떨어뜨리므로 가볍고 따뜻한 옷을 여러 겹 껴입는 것이 활동성에 도움이 된다.
가정 내 환경 개선도 필수적이다. 낙상 사고의 약 60~70%가 실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바닥 물기에 미끄러지거나, 자다가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올 때 넘어지는 경우다. 고령층은 근육량이 줄어든 상태여서 중심을 잃으면 순발력 있게 대처하기 어렵다.
따라서 화장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나 스티커를 붙여두고, 침대와 변기 옆에는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특히 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복도와 화장실에 감지형 야간등을 설치하면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기상 악화가 예고된 날에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최선이다. 김 교수는 “겨울철 낙상은 단순 타박상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낙상에 따른 미세한 손상 등으로 재낙상 위험이 2배 이상 높아지는 만큼, 평소 보행 습관과 외출 환경을 엄격히 점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엄 센터장은 “낙상 후 허리나 엉치 부위에 통증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정밀 검사로 추가 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